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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게시판

제목미국 PCA_창조연구위원회 보고서_창세기 1–3장의 역사성에 대한 신약성경의 견해2026-10-1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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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B. 창세기 1–3장의 역사성에 대한 신약성경의 견해

신약성경이 창세기 1–3장을 해석하는 방식은 교회에 규범이 됩니다. 창조 주간의 길이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는 잠시 제쳐 두더라도, 성경 유비의 원리는 창세기 1–11장, 특히 1–3장을 실제 역사로 읽도록 요구합니다. 이는 영감된 성경 안에서 이 본문들이 형식적으로 다루어지는 방식뿐 아니라, 그 본문들에 걸려 있는 중요한 성경신학적 쟁점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창세기 1–11장을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기독교 자체가 무너집니다. 다음은 그 증거의 일부를 살펴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창세기 1–3장을 실제 역사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경솔한 이혼을 허용한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반박하시면서 창세기 1:27, 곧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 때로부터 창조주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마 19: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창조주께서 창세기 2:24에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마 19:5)고 하신 말씀에 근거해 혼인 언약을 경솔하게 해체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논증하셨습니다. 바울도 엡 5:31과 고전 6:16에서 창세기 2:24를 비슷하게 사용합니다.

안식일 준수에 관해서도 예수님은 안식일이 첫 사람 아담을 위해 제정되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라는 말씀은 창세기 2:3, 곧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라는 구절을 분명히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제정을 창세기의 이 본문과 연결하심으로써 안식일을 창조 주간 안에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살인과 거짓의 아비인 사탄에 비유하실 때 창세기 3:4에 나오는 뱀의 속임수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사도들 역시 창세기 1–3장을 실제 역사로 다룹니다. 바울은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며, 그의 불순종 행위로 저주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가르칩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롬 5:12–20). 바울은 아담이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은 일(창 2:17)을 “범죄”라고 부릅니다(롬 5:15). 이어 성경의 언약신학 전체가 기초하는 대표적 머리 됨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아담은 인류의 머리이며, 그의 죄는 인류에게 전가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많은 사람에게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하시는 “한 사람”이십니다(롬 5:19). 두 경우 모두 한 사람이 자기 백성을 대표하여 행동합니다. 이것은 인류가 죄 아래 있는 상태와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의가 믿는 자들에게 전가되는 교리의 기초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22에서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같은 원리를 말합니다. 또한 뱀이 하와를 속인 일을 고린도 교회의 유혹과 비교하면서,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3)고 씁니다.

바울은 창세기 3:17–19에 나오는 땅에 대한 저주도 언급합니다. 곧 땅이 저주를 받아 사람이 평생 수고해야 하고,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며, 사람이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고, 흙에서 취함을 받았으므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20–22에서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며, 믿는 자들의 부활과 함께 얻게 될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기를 기다린다고 설명합니다. 이 본문은 아담의 타락이 우주 전체에 미친 영향을 성경에서 가장 웅대한 방식으로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지 않은 피조물까지 죽음과 부패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은 역사적 아담의 타락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에 이를 때 피조물도 그 영광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그 영광은 믿는 자들이 살아 계신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찾아옵니다. 그때까지는 투쟁과 싸움이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승리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3:15에서 우리의 첫 조상에게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그들이 사탄과 그의 후손을 이길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로마 교회도 사탄을 이길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롬 16:20)

인류의 역사적 타락을 부정하면 죄를 비성경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르트주의적 관점에서는 죄를 인간의 반역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인간의 유한성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아담의 타락을 실제 시공간 안에서 일어난 역사로 읽도록 요구합니다. 바울은 창세기 3장의 아담의 죄가 인류 역사의 비극적인 흐름을 결정했다고 이해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사건이며, 그에 따라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한 함의도 뒤따릅니다.

고린도전서 15:45–47에서 바울은 창세기 3장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창세기 2:7의 아담 창조를 다룹니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바울은 창세기 2:7을 분명히 실제 역사로 받아들입니다. 그의 논증에서 신자의 육체적 부활 소망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평행 관계에 기초합니다. 땅에 속한 생명체로 아담을 창조하신 일은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구속받은 인류를 부활시키고 변화시키시는 재창조 행위의 모형입니다. 연결은 분명합니다. 창조, 특히 창세기 2:7에 나타난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 행위는 신자를 부활시키고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행위의 모형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45 후반부에서 창세기 2:7 자체가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이 영화로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을 예시한다고 논증합니다. 구속은 창세기 2:7에 드러난 창조 목적을 성취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창조와 종말론을 명시적으로 연결하며, 히브리서 저자도 같은 방식으로 논증합니다.

바울은 또한 구원이 죄인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포함한다고 가르침으로써,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창 1:26–27)을 확증합니다. 새 창조의 부활하신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점진적으로 새롭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는 자니라.”(골 3:9–10; 엡 4:22–24 참조)

고린도후서 4:6에서 바울은 창세기 1:3의 창조 명령 “빛이 있으라”와, 그리스도를 아는 구원의 지식을 주시는 아버지의 사역을 유비적으로 연결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창조와 영적 조명은 모두 초자연적 행위이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다룰 때도 바울은 창세기 2장의 권위 있는 기록에 호소합니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딤전 2:13–14; 고전 11:9 참조) 바울의 논증을 오늘날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지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영감받은 사도는 창세기 2–3장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다루며, 이를 교회가 가르치는 직분의 질서를 유지해야 할 책임과 연결합니다.

히브리서 저자 역시 성경의 첫 두 장을 역사로 해석합니다. 히브리서 3:7–4:13에서 그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려는 신약 교회를 광야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주제로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4:4은 창세기 2:2의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하나님의 이 안식은 교회의 소망입니다. 히브리서는 불신앙으로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권고합니다(4:1, 10–11). 저자는 그 안식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4:3) 존재했다고 말하며, 6절에서는 “그 안식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창세기 2:2를 역사에 대한 서술인 동시에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창조 때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 곧 우리가 그분의 안식에 들어가는 일은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됩니다.[155]

히브리서 저자는 11:3에서도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암시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야고보는 하늘의 광명체들을 창조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흠 없는 순결함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약 1:13–17) 야고보는 또한 이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므로 혀를 제어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약 3:9)

베드로도 창조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언급하며, 장차 있을 심판에서 신자들이 정당함을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홍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연결합니다. 그는 창조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하늘이 옛적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벧후 3:5) 이는 땅이 물로 덮여 있던 초기 상태와 하나님께서 바다와 마른 땅을 나누신 일(창 1:2–9)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이 창세기 1–3장을 실제 역사로 다룬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인정하므로, 이 사실은 교회의 성경 해석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이 본문들을 해석할 때 걸려 있는 것은 창세기 1–3장의 역사성만이 아닙니다. 구속 언약 계획의 구조 자체가 창세기 1–3장에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 첫 장들에 나타난 성경의 계시에는 종말론적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사역, 구원론과 완성에 대한 그 함의, 그리고 혼인 제도와 교회 질서에 관한 윤리적 요구가 결부되어 있습니다. 역사는 여기서 시작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에 의해 주권적으로 규정됩니다.

모세는 창세기 1–3장에서 실제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고 원형에 가깝게 기록했습니다. 창세기 1–11장을 역사적으로 거부하면 기독교 자체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세부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든, 이 사건들과 인물들은 반드시 인정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