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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신학 게시판

제목행위언약 안에 계신 그리스도-설교원고-부흥회용-<두 아담의 언약이야기-이용호 저> 관련2026-10-19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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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언약 안에 계신 그리스도


<설교 개요>
첫 아담의 실패와 마지막 아담의 승리

본문: 창세기 2:16–17; 창세기 3:15; 로마서 5:12–21; 고린도전서 15:21–22, 45–49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핵심 명제: 첫 아담은 인류의 언약적 대표자로서 순종의 책임을 맡았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대표하여 완전하게 순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담당하심으로써 의와 생명의 길을 여셨다.


A. 서론: 왜 우리는 두 아담을 알아야 하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왜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할까요?
왜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한 사람의 범죄와 한 분의 순종을 대조하면서 인류의 정죄와 칭의를 설명할까요?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8-19)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45절에서는 ‘아담을 첫 사람 아담으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으로 설명합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전서 12:45)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 첫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의 언약과 구속사, 복음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복음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방법이나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복음은 첫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이루셨는가를 선포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지만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고, 인류는 정죄 아래 놓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구원의 약속을 주셨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15)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인 브라이언 에스텔(Bryan D. Estelle)은 ‘아담의 실패와 그리스도의 사역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성경의 언약 구조와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¹

오늘 우리는 다섯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첫 아담은 행위언약 안에서 인류의 대표자로 세워졌습니다.
  2. 첫 아담의 실패는 죄와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3.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실패를 극복하셨습니다.
  4. 행위언약에 대한 도전은 무엇이며, 어떻게 평가해야 합니까?
  5.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구원받은 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B.
본론

1. 첫 아담은 행위언약 안에서 인류의 대표자로 세워졌다

1) 아담에게는 순종의 책임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불순종하면 죽음이라는 결과가 뒤따를 것이었습니다.

이 명령은 단순한 식생활 규칙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했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과 악의 기준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선악과 시험은 아담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지를 드러내는 ‘언약적 시험(Covenantal Probation, 존 머레이, 메러디스 클라인)’이었습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순종, 언약적 대표성의 검증, 그리고 에덴에서 맡겨진 성전–왕국 사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²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장 2항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첫 언약에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 조건은 완전하고 개인적인 순종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언약을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행위언약이라고 부릅니다.³

   “
사람과 맺으신 최초의 언약은 행위 언약이었다. 이 언약에서 생명은 아담에게
     약속되었으며, 아담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도 약속되었는데, 그 조건은 완전하고
     개인적인 순종이었다.”
(WCF 7.2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

여기서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순종을 요구하셨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언약을 베푸셨다는 사실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교제와 생명을 누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언약적 배려에 의존했습니다.

2) 아담은 자기 자신만을 대표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의 특별한 지위는 그가 최초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인류의 대표자로서 언약적 책임을 맡았습니다.

로마서 5장 12–19절에서 바울은 한 사람의 범죄로 죄와 사망이 들어왔으며,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개혁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언약적 대표성 또는 연방적 대표성(federal headship)>입니다. 대표자의 행위가 그가 대표하는 사람들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는 행위언약을 아담의 대표적 지위와 순종 및 불순종의 결과를 연결하는 언약 관계로 설명합니다. 메러디스 클라인(Meredith G. Kline) 역시 창조와 에덴의 시험을 언약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아담에게 주어진 왕국적 사명과 순종의 시험을 함께 다룹니다.⁴

따라서 아담의 범죄는 개인적인 실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류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불순종은 인류의 상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죄는 단지 개인의 약점이나 잘못된 습관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그분의 통치에 반역하는 것입니다. 첫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대표자의 자리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실패한 아담을 대신하여 누가 하나님께 완전한 순종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죄인이 자기 힘으로 과거의 불순종을 없애고 완전한 의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단순한 도덕적 모범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순종하고 죄의 형벌을 담당하실 구속자가 필요합니다.


2. 첫 아담의 실패는 죄와 사망을 가져왔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하며,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거짓 약속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세기 3:1)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신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고, 그 결과 죄와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죄의 본질은 단지 금지된 열매를 먹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을 거부하며, 창조주로부터 독립하려는 반역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8)

바울은 한 사람의 범죄와 한 분의 의로운 행위를 대조합니다. 아담의 범죄는 정죄를 가져왔지만,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는 생명에 이르는 칭의를 가져왔습니다.

만약 아담의 문제가 단순히 나쁜 본을 보인 데 있었다면, 우리는 좋은 본을 따라 사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보다 더 깊은 진리를 가르칩니다. 아담의 범죄는 대표자의 실패였고, 그 결과는 정죄와 사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 직후에도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구속 목적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의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행위언약은 왜 구원이 필요한지를 보여 주고, 은혜언약은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3.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실패를 극복하셨다

1)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 오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릅니다. 첫 사람 아담은 불순종으로 죄와 사망을 가져왔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의와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첫 아담이 실패한 일을 해결하시는 구속자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지만 죄는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으며, 아버지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전하게 수행하셨습니다.

여기서 설교 제목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행위언약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에덴에서 아담과 동일한 방식으로 행위언약의 당사자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첫 아담이 실패한 순종을 이루시고, 자기 백성을 위해 언약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에스텔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단순히 죄의 형벌을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대표하여 순종하시고, 그들에게 언약의 복을 가져오십니다.⁵

2) 그리스도는 능동적 순종으로 의를 이루셨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순종을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구별합니다. 이 구별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서로 분리된 두 구원 사역으로 나누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완전한 삶과 십자가의 죽음이 함께 우리의 구원을 성취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능동적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율법과 아버지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따르셨습니다. 아담은 유혹 앞에서 실패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시험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우리에게 필요한 의가 그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죄를 용서받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그 의를 이루셨습니다.

3) 그리스도는 수동적 순종으로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수동적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수동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무기력하게 행동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이 죄인을 대신하여 고난과 형벌을 담당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은 죄의 형벌을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무시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형벌을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8장과 11장은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이 구속과 칭의의 기초임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의 빚을 갚으셨고,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⁶

4) 그리스도의 의가 자기 백성에게 전가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순종과 속죄는 어떻게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까?

개혁주의 신학은 이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라는 교리로 설명합니다. 전가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믿는 자의 것으로 여겨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발견되는 공로나 도덕적 성취를 근거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와 만족을 우리에게 적용하셔서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장 1항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을 신자에게 전가(칭의는 의의 주입(infusing righteousness)이 아니라 의의 전가(imputing righteousness)에 근거한다.)하신다고 고백합니다.⁷

  “
하나님께서는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을 또한 값없이 의롭다 하신다. 칭의는 그들 안에 의를 주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인격을 의로운 것으로 여기시며 받아 주시는 것이다. 이는 그들 안에서 이루어진 어떤 일이나 그들이 행한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믿음 자체나 믿는 행위 또는 다른 어떤 복음적 순종을 그들의 의로 전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을 그들에게 전가하심으로 의롭다 하신다.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지한다. 이 믿음도 그들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WCF 11.1 — 칭의(Justification))

여기서 믿음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만, 믿음 자체가 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는 도구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로입니다. 우리의 순종은 불완전하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은 완전합니다. 우리의 죄는 무겁지만 그리스도의 속죄는 충분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를 자랑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행위언약을 이해하면 왜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야 했는지, 왜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 구원의 기초인지, 왜 은혜언약이 필요한지가 선명해집니다.⁸


4.
행위언약에 대한 도전과 그에 대한 응답

행위언약은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중요한 교리이지만, 모든 신학자가 전통적인 행위언약의 명칭과 설명을 똑같이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비판의 성격을 구별하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성경에 ‘행위언약’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주장

행위언약에 대한 한 가지 비판은 창세기 1–3장에 ‘행위언약’이라는 용어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사실입니다. 성경 본문에 그 용어가 그대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신학적 용어가 성경에 직접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그 교리의 성경적 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종합하여 여러 교리를 정리해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용어 자체의 존재 여부만이 아니라 그 용어로 설명하는 내용이 성경에 근거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의 명령과 불순종에 대한 형벌, 그리고 로마서 5장에서 설명하는 아담의 대표성과 그리스도의 순종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장 2항은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종합하여 첫 언약을 행위언약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행위언약이라는 명칭 자체가 성경 구절인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그 명칭이 성경에 직접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내용을 성급하게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2) 존 머리: ‘행위언약’보다 ‘아담의 경륜’

존 머리(John Murray)는 행위언약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입니다. 그는 「아담의 경륜」(The Adamic Administration)이라는 글에서 ‘행위언약’이라는 표현이 아담에게 주어진 관계에 포함된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그 관계가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언약이라고 불리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⁹

그러나 머리의 견해를 단순히 “그는 아담의 대표성이나 그리스도의 순종을 부정했다”라고 요약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머리는 아담의 순종 의무와 시험,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제2아담으로서 순종하신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전통적인 ‘행위언약’이라는 명칭과 그 개념의 일부 설명을 수정하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머리의 비판은 행위언약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라기보다, 언약이라는 용어의 사용과 은혜 및 공로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관한 신학적 수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3) 칼 바르트와 제임스 B. 토런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구분에 대한 비판

칼 바르트(Karl Barth)와 제임스 B. 토런스(James B. Torrance)는 전통적인 행위언약 교리에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인물들로 논의됩니다.

토런스는 언약을 계약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행위에 대한 조건과 보상의 구조로 지나치게 설명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그는 전통적인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구분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시는 방식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¹⁰
(
이 견해에 대해 ‘그라아프’는 ‘하나님의 호의(은총)의 언약’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 S. G. DE.
그라아프, <약속 그리고 구원 1권:천지창조에서 가나안 정복까지>   
         (
크리스챤서적, 1988), 40.

바르트 역시 전통적인 개혁파의 행위언약 구도에 비판적이었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는 은혜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J. V.
페스코(J. V. Fesko)는 현대 행위언약 논쟁을 다루면서 바르트와 토런스, 머리 등의 비판을 검토하고, 이들이 성경의 명시적 증거, 언약의 성격, 개혁파 정통주의의 신학적 방법에 관해 서로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고 설명합니다.¹¹

이들의 우려 가운데 검토할 가치가 있는 점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베푸신 창조의 선하심과 언약적 배려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행위언약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등한 계약이나 단순한 공로 거래로 묘사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 아담의 순종 책임과 불순종에 따른 심판까지 약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의 명령과 책임을 분명하게 제시하며, 로마서 5장은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을 대조합니다.

4) 행위언약을 어떻게 평가해야 합니까?

행위언약에 대한 비판을 모두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 성경에 사용된 표현과 신학적 용어를 구별하자는 지적은 유익합니다.
둘째, 행위언약을 하나님의 은혜와 무관한 공로 거래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전통적인 용어를 수정하는 견해와 아담의 대표성 및 그리스도의 순종을 약화하는 견해는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아담에게는 순종의 책임이 있었고, 그의 불순종은 인류에게 정죄와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자기 백성을 대표하여 순종하셨고,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장과 11장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을 구별하면서도, 타락한 죄인의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에 달려 있음을 함께 고백합니다.¹²

따라서 행위언약은 복음의 반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왜 그리스도의 순종이 필요한지, 왜 십자가가 필요한지, 왜 우리의 의가 그리스도에게서 와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C.  적용: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구원받은 자는 순종의 삶으로
           
부름받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순종하셨다면, 이제 우리는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순종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구원받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장 2항은 선행이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의 열매이며, 감사의 표현이라고 가르칩니다.¹³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오류를 피해야 합니다.
첫째, 자신의 순종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는 오류입니다. 우리의 선행은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 은혜를 핑계로 순종을 무시하는 오류입니다. 참된 은혜는 우리를 죄 가운데 그대로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믿음으로 받은 사람은 감사와 사랑으로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구원의 뿌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에 근거하고, 성령께서는 그 구원이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의 열매로 나타나게 하십니다.


D. 결론
: 첫 아담은 실패했지만 마지막 아담은 승리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인류의 대표자로 세워졌지만 실패했습니다. 그의 불순종으로 죄와 사망이 들어왔고, 인류는 정죄 아래 놓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구원의 약속을 주셨고, 마침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첫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셨고,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의 죄에 대한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분의 순종과 속죄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첫 아담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완전하게 순종했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완전하게 순종하셨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의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행위언약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더라도, 우리는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이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 아담의 불순종으로 정죄가 왔지만, 마지막 아담의 순종으로 의와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의지하십시오. 은혜를 값싼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의 순종과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자답게 믿음과 감사로 순종하십시오. 우리의 순종이 구원의 근거는 아니지만, 구원받은 백성의 삶에는 순종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와 생명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정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 복음을 믿고, 이 복음으로 위로받으며, 이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각주

  1. Bryan D. Estelle, “Christ in the Covenants,” 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 February 1, 2007.
  2. 이용호, 『두 아담의 언약 이야기: 개혁주의 언약 사상과 구속사』(2026), 38–41.
  3. Westminster Assembly,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 7.2.
  4.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MI: Eerdmans, 1939), 211–18; Meredith G. Kline, Kingdom Prologue: Genesis Foundations for a Covenantal Worldview (Eugene, OR: Wipf & Stock, 2006).
  5. Estelle, “Christ in the Covenants.”
  6. Westminster Assembly,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8.4–6, 11.1–3.
  7. Westminster Assembly,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1.1.
  8. 이용호, 『두 아담의 언약 이야기』, 122–25.
  9. John Murray, “The Adamic Administration,” in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vol. 2, Select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 (Edinburgh: Banner of Truth, 1977), 47–59.
  10. James B. Torrance, Worship, Community and the Triune God of Grace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6); see also his discussion of covenant and contract in Reformed theology.
  11. J. V. Fesko, The Covenant of Works: The Origins, Development, and Reception of the Doctrin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187–212.
  12. Westminster Assembly,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7.2–3, 11.1–3.
  13. Westminster Assembly,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