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을 종속절로 번역한다고 해서 반드시 개혁주의의 창조 교리가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개혁주의 학자들은 독립절 해석을 선호해 왔는데, 그 이유는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함의를 더 자연스럽게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1. 독립절 해석이 강조하는 것
전통적인 번역: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여기서는 1절 자체가 완전한 문장입니다.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 (1절)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함 (2절)
- 하나님이 질서화 작업을 시작하심 (3절 이하)
이 해석은 특히 다음을 강조합니다.
- 하나님의 절대적 창조 행위
- 창조의 시작점
- 하나님이 우주 만물의 최초 원인이라는 사실
-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그래서 존 커리드, 브루스 월트키, 번 포이트레스 등 많은 개혁주의 학자들이 독립절 해석을 선호합니다.
2. 종속절 해석이 제기하는 질문
종속절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시작하셨을 때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였다."
이 번역을 처음 읽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2절의 혼돈한 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가?"
바로 이것이 전통적 개혁주의 학자들이 조심하는 지점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주장한다면,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어떤 물질이 있었다."
이는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와 충돌하게 됩니다.
3. 그러나 종속절 해석자들이 반드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현대 학자들 가운데 종속절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우리는 창세기 1:1의 문법만 말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즉,
- 종속절 해석 = 문법 문제
- 무로부터 창조 부정 = 신학 문제
라고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고든 웬함은 종속절 해석에 상당히 우호적이지만,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라는 성경의 교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통 이렇게 설명합니다.
창세기 1장은 우주의 재료가 어디서 왔는가를 설명하려는 본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혼돈을 질서로 바꾸시는 창조 사역을 설명하는 본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4. 포이트레스의 중요한 지적
번 포이트레스는 이 논쟁에서 매우 균형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그의 핵심 논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1의 문법이 독립절인지 종속절인지의 문제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교리는 동일한 문제가 아니다.
즉,
- 독립절 해석 → 무로부터의 창조와 잘 조화됨
- 종속절 해석 → 문법적으로 가능할 수 있음
- 그러나 어느 해석을 택하더라도 성경 전체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침
이라고 봅니다.
특히 요한복음 1:3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라고 말하고,
히브리서 11:3은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고 말합니다.
따라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창세기 1:1 한 절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확립됩니다.
5. 개혁주의 학자들이 독립절을 선호하는 이유
실제로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독립절 해석 | 종속절 해석 |
|---|
전통적 해석 | 현대 학계에서 널리 논의 |
창조의 절대적 시작을 명확히 표현 | 창조 과정의 시작을 강조 |
무로부터 창조를 자연스럽게 읽어냄 | 오해의 가능성이 있음 |
개혁주의 주석가들이 주로 선호 | 일부 개혁주의 학자들도 문법적 가능성 인정 |
그래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대개
"종속절 번역이 반드시 이단적이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립절 번역이 본문의 의미와 신학을 더 잘 드러낸다."
고 평가합니다.
설교용 한 문장
창세기 1:1을 종속절로 번역하든 독립절로 번역하든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라는 성경의 핵심 교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통은 하나님의 절대적 창조 행위와 창조의 시작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독립절 해석을 선호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