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창조의 날들을 길이가 특정되지 않은 기간으로 해석하는 견해를 누가 주장해 왔는가? 날-시대 해석은 단순히 19세기에 찰스 다윈(Charles Darwin)과 진화론적 과학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한 견해가 아닙니다. 고대부터 이미 ‘날(day)’이라는 단어가 확장된 기간을 의미할 수 있다는 인식이 존재하였습니다. 물론 정통 개혁주의 진영 안에서 체계적인 형태의 날-시대 해석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증거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의 휴 밀러(Hugh Miller)[64]와 로버트 쇼(Robert Shaw)[65]와 같은 인물들의 시대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창조의 날들을 더 긴 기간으로 이해하는 단편적인 선행 견해들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후대의 날-시대 해석처럼 충분히 체계화되고 정교하게 발전된 해석 체계를 이루지는 못하였습니다.[66] 기원전 2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유대 묵시 문헌 『희년서』(Book of Jubilees)는 4장 29-3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열아홉 번째 희년의 마지막, 곧 일곱째 주간의 여섯째 해(930년)에 아담이 죽었다. 그의 모든 자녀들은 그가 창조되었던 땅에 그를 장사하였다. 그는 땅에 묻힌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천 년에서 70년이 부족하였다. 이는 하늘의 증언에 따르면 천 년이 하루이기 때문이다.[67] 그러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하여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날의 연수를 다 채우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날 안에 죽었기 때문이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는 창조에 관하여 다섯 번 내지 여섯 번 정도 여러 저술에서 논의하면서, 창조의 여섯 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추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된 견해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모든 창조가 순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입장(instantaneous creation)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68] "이 날들이 어떠한 종류의 날들이었는지 우리는 이해하기가 극히 어렵고, 어쩌면 전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존 칼빈은 창세기 1:5 주석에서 ‘육일의 기간(in the space of six days)’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즉각적 창조(instantaneous creation) 견해와 그에 따른 추론으로부터 자신을 어느 정도 구별하려 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Institutes) I.14.20에서는 우주 창조의 역사를 자세히 서술하지 않지만, 바실리우스(Basil) 와 암브로스(Ambrose) 의 저술을 호의적으로 언급합니다. 바실리우스의 『헥사에메론(Hexaemeron)』[69]은 해가 실제로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분명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암브로스의 『헥사에메론』[70] 역시 해가 넷째 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또한 창세기 1:14에 대한 칼빈의 주석은, 그가 별들과 해와 달이 오직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믿었음을 보여 줍니다.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 역시 칼빈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한순간에(in one moment)’ 창조하셨다는 견해로부터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는 창조가 ‘여섯 개의 구별되는 날들(six distinct days)’ 또는 ‘여섯 개의 구별되는 기간들(six distinct spaces of time)’ 동안 이루어졌다고 말하였으며, 해와 달과 별들은 넷째 날 이전에는 창조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71]
웨스트민스터 총회 신학자들(Westminster Divines)은 칼빈, 퍼킨스, 그리고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대주교의 『아일랜드 신앙조항』(Irish Articles, 1615) 에서 사용된 ‘육일의 기간 동안(in the space of six days)’ 이라는 표현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에서 창조의 날들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긴 기간인지는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넷째 날 이전의 날들이 일반적인 태양일(solar days)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물론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여한 일부 인사들, 특히 탁월한 성경학자였던 존 라이트풋(John Lightfoot) 은 창조의 날들이 24시간의 하루였다는 점을 분명히 주장하였습니다.[72] 그러나 총회 전체의 주된 관심은 창조의 날들의 정확한 길이를 규정하는 데 있었다기보다, 순간창조설(instantaneous creation) 과 자신들의 입장을 구별하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이러한 순간창조설은 토머스 브라운 경(Sir Thomas Browne)과 존 밀턴(John Milton)과 같은 동시대 인물들에 의해 주장되고 있었습니다.[73]
웨스트민스터 총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록 완전히 정통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출처이기는 하지만, 날-시대 해석의 명시적인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토머스 버넷(Thomas Burnet, 1635-1715)은 윌리엄 3세의 궁정 목사였으나, 창세기에 관한 자신의 몇몇 견해 때문에 결국 해임되었습니다. 그는 창조의 여섯 날이 길이가 정해지지 않은 기간들(periods of undetermined length)을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74] 흥미롭게도, 이 저술은 그의 친구였던 아이작 뉴턴 경(Sir Isaac Newton)의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버넷의 견해는 부분적으로 해가 실제로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는 그의 이해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1698년에는, 현대 독자들에게는 주로 요세푸스(Josephus) 저작들의 편집자로 알려진 영국 침례교인 윌리엄 휘스턴(William Whiston)이 창조의 날들을 연수(年數, years)로 이해하였습니다.[75] 또한 네덜란드 신학자 헤르만 페네마(Hermann Venema, 1697-1787)는 ‘모세가 보통의 날들이 아니라 여러 해(years)와 여러 세기(centuries)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견해를 반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반박은 역으로, 18세기 그의 주변 신학계 안에 그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보여 줍니다.
19세기에는, 다윈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1859) 출간 이전부터 지질학이 제시하는 ‘오래된 지구’(old earth)에 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시기에, 로버트 쇼(Robert Shaw)는 창조의 날들을 장구한 시대들(ages)로 해석할 가능성을 호의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76] 또한 미국 개혁교회(Reformed Church in America)의 테일러 루이스(Tayler Lewis) 교수는 그의 저서 『창조의 여섯 날』(The Six Days of Creation)에서 장구한 시대설을 옹호하였으며,[77]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의 목사였던 도널드 맥도널드(Donald MacDonald) 역시 『창조와 타락: 창세기 1-3장에 대한 변증과 해설』(Creation and the Fall: A Defence and Exposition of the First Three Chapters of Genesis)에서 같은 견해를 주장하였습니다.[78] 구(舊) 프린스턴 신학자들 가운데서는 찰스 하지(Charles Hodge), A. A. 하지(A. A. Hodge), 그리고 벤저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가 날-시대 해석을 지지하였습니다. 또한 J. 그레셤 메이천(J. Gresham Machen),[79] O. T. 앨리스(O. T. Allis),[80]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E. J. 영(E. J. Young)[81] 역시 같은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J. 올리버 버스웰 주니어(J. Oliver Buswell, Jr.) 역시 이러한 입장을 취하였습니다.[82] 또한 개혁장로교회 복음주의 대회(Reformed Presbyterian Church, Evangelical Synod)와 커버넌트 신학교(Covenant Seminary) 의 전통 안에서는 R. 레어드 해리스(R. Laird Harris)와[83] 프랜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도 같은 견해를 지지하였습니다.[84]
한편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James Montgomery Boice)는 자신의 세 권짜리 『창세기 주석』에서 제1권 5-9장에서 진화론(evolution),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 간격 이론(gap theory), 육일 창조론(six-day creationism), 그리고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을 차례로 검토합니다.[85] 그리고 이러한 여러 견해를 검토한 후, 최종적으로 날-시대 견해를 가장 타당한 견해로 지지하였습니다.[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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