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공허, 흑암 속에 있는 땅의 구원 이야기 본문 말씀: 창세기 1장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개역개정)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over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face of the waters.” (Genesis 1:2, ESV)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Genesis 1:2, NIV)
A. 서론: 구속사의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1장 1) 하나님의 구속사로 창세기를 읽어야 한다. (성경의 통일성과 구속사 – Geerhardus Vos, 1862-1949, 성경신학의 아버지)
성경은 B.C. 1450년경 모세가 모세오경을 기록한 때부터 A.D. 95년경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완성하기까지 약 1,500년에 걸쳐 집필되었으나, 관통하는 단 하나의 원대한 주제인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완벽한 통일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을 읽을 때도, 단순한 물리학적 지구 원시 상태나 우주 형성론으로 읽어서는 안 되며, 요한계시록에서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스러운 구원 완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10
2) 창세기 1:1의 해석 – 문법적 해석과 기능 창세기 1장 1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은 보이지 않는 세계(하늘)와 보이는 세계(땅)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하고 무결한 창조 선언(클라인, 독립절)입니다.1
(1) 문법적 해석 – 독립절인가? 종속절인가? a) 독립절(Independent Clause) 견해
- 독립절 견해는 창세기 1:1을 완전한 문장으로 이해합니다. - 지지자: 메러디스 클라인(Meredith G. Kline), 버논 포이트레스(Vern S. Poythress), 존 콜린스(C. John Collins), 존 커리드(John D. Currid), 빅터 해밀턴(Victor P. Hamilton) b) 종속절(Dependent Clause) 견해
- 종속절 견해는 창세기 1:1을 2-3절과 연결되는 종속적 문장으로 봅니다. 번역하면 다음과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시작하셨을 때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였고..." (창 1:1-2) “When God began to create the heavens and the earth,(종속절, 접속사/시간부사절)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주절)” (Genesis 1:1-2) - 이 견해는 고대 근동 창조 기사와의 비교 연구 및 히브리어 문법 연구를 바탕으로 제시되었습니다. - 여기서 핵심은 בְּרֵאשִׁית (bereshit) 를 절대형(absolute state)이 아니라 연계형(construct state) 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번역이 나옵니다. “In the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NRSV) “When God began to create heaven and earth... “(NJPS, 유대교 학술번역, 1985) - 문제점: 1절이 종속절이면 2절이 주절이 됩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기죠. "그렇다면 2절의 혼돈한 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가?" 바로 이것이 전통적 개혁주의 학자들이 조심하는 지점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주장한다면,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어떤 물질이 있었다." 이는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와 충돌하게 됩니다. (2) 첫 창조 사건 견해 vs. 요약문 견해 a) 첫 창조 사건 견해(Initiation View) 이 견해는 창세기 1:1이 하나님께서 우주 전체를 창조하신 최초의 사건을 기록한다고 봅니다. 이어지는 1:2는 그 창조된 세계의 초기 상태를 설명하고, 1:3부터는 하나님께서 그 세계에 질서와 충만함을 부여하시는 창조 사역이 전개된다고 이해합니다. 메러디스 클라인(Meredith G. Kline), 번 포이트레스(Vern S. Poythress), 존 콜린스(C. John Collins), 존 커리드(John D. Currid), 빅터 해밀턴(Victor P. Hamilton) 등이 대표적인 지지자들입니다. b) 요약문 견해(Summary View)
이 견해는 창세기 1:1이 독립된 문장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기능을 최초의 창조 사건을 기록한 본문이라기보다 창세기 1장 전체를 소개하는 표제나 요약문으로 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선언이 1:3 이하에서 펼쳐질 6일 창조의 전체 내용을 한 문장으로 먼저 요약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대표적인 학자는 브루스 월트키(Bruce K. Waltke)입니다. 3) 창세기 1:1-2절의 신학적 의미 우리는 창세기 1장 1-2절을 읽으면서 문법적인 의미뿐 아니라 신학적인 의미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1절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2절에 이르면 보이는 세계인 땅은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납니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로 묘사되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계속 진행되어야 할 미완성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 2절은 단순히 혼란스러운 우주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혼돈을 질서로, 공허를 충만으로, 어둠을 빛으로 변화시키시는 창조와 구속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를 안식의 완성으로 인도하시는 '땅의 역사', ‘땅의 구원 이야기’, 곧 창조에서 새 창조에 이르는 구속사적 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B. 본론 1. 문법적 의미와 원어적 조명 1) '그리고 그 땅' (히브리어 וְהָאָרֶץ, We-ha-aretz) 2절은 히브리어 원어로 ‘왜하에레츠(וְהָאָרֶץ)’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 접속사 ‘왜(וְ)’: “그리고 / 그런데” (And / But)
- 정관사 ‘하(הָ)’: “그” (The)
- 명사 ‘에레츠(אָרֶץ)’: “땅” (Land / Earth)
(1) 와우-분리절(배경 설명절) – 2절은 1절의 연속절 – 개혁주의 관점 창세기 1:2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웨하아레츠 하예타 토후 와보후) “그리고 그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였다.” 여기서 וְ(웨, waw) 뒤에 정관사가 붙은 명사(הָאָרֶץ, 하에레츠) 가 나옵니다. 이 구조는 일반적으로 개혁주의 히브리어 문법학자들이 말하는 ‘와우-분리절(waw-disjunctive)’ 또는 ‘배경 설명절(circumstantial clause)’로 이해됩니다. 즉, "그때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였다.", "이제 땅의 상태를 말하자면..." 이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1:2은 1절 이후에 벌어진 새로운 사건을 기록한다기보다, 1절에서 언급된 '하늘과 땅' 가운데 특별히 '땅'의 상태를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John Currid, Bruce Waltke, Vern Poythress(하나님께서 점진적으로 질서를 부여하시기 전의 미완성 상태를 보여주는 구절), Gordon Wenham(2절은 1절에서 창조된 땅의 상태를 기술한다.)) (2) '와브 반전(Waw-consecutive)' 구문 – 대조 구문 간격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문법적으로 접속사 '와브(Waw)'가 이끄는 '와브 반전(Waw-consecutive)' 구문으로 보았습니다. 즉, 문법적 의미는 “그리고 바로 그 땅이”입니다. 이는 하늘의 보이지 않는 무결한 영원과 대조적으로, 참된 안식에 이르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한 보이는 세상(이 땅)의 정황과 우리 삶의 현장에 독자의 시선을 집약시킵니다.
2) '혼돈, 공허, 흑암' (תֹהוּ וָבֹהוּ וְחֹשֶׁךְ, Tohu, Bohu, Hoshekh)
2절의 상태는 단순한 자연계의 물리적 무질서나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혼돈과 공허’는 ‘형태가 없고 비어 있음’, ‘황폐하고 텅 빔’ 등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인 관점을 제공합니다.2 1) 혼돈(토후, Tohu): (1) 문법적: 질서가 아직 부여되지 않은 상태, 아직 형태와 기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 (2) 신학적: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에 질서와 목적을 부여하시기 이전의 미완성 상태를 의미 2) 공허(보후, Bohu): (1) 문법적: 채워지지 않은 상태, 아직 충만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2) 신학적: 하나님께서 생명과 충만함으로 채우시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 3) 흑암(호셰크, hoshekh): (1) 문법적: 빛이 없는 상태, 물리적 어둠 (2) 신학적: 하나님의 창조적 빛이 아직 비추어지지 않은 상태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레미야 4장 22~23절에서 창세기 1장 2절의 단어들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고백합니다.3 ³ “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23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렘 4:22–23)
결국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란 자연계의 초기 모습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선을 행할 능력조차 없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한 영적 실존을 상기시킵니다. 3) '하나님의 영의 운행' (רָחַף, Rahaph) 2절 후반부의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에서 ‘운행하다’는 히브리어 ‘라하프(רָחַף)’입니다. 이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신명기 32장 11절에 잘 풀어서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라하프)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신 32:11)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라하프’ 하신다는 것은 어미 닭이 알을 품듯, 독수리가 새끼 둥지 위에서 날개를 너풀거리며 보호하듯, 광야 황무지에 버려진 인생 속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치고 들어오셔서 감싸 안으시고 다루시는 주권적인 은혜의 개입을 의미합니다.4
2. 신학적 논쟁과 성경적 재조명 1) 간격이론 (Gap Theory) 및 파괴-재건 이론 (Ruin-Reconstruction Theory) 일부 신학자들은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와 2절의 혼돈 사이에 오랜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며, 사탄의 타락으로 인해 원래의 세계가 파괴되어 2절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주장합니다. 3절은 파괴된 세상을 재건하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5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 1780-1847), G. H. 펨버 (George Hawkins Pember, 1837-1910), 아서 커스턴스 (Arthur C. Custance, 1910-1985), C. I. 스코필드 (C. I. Scofield, 1843-1921), Lewis Sperry Chafer, 일부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학자들)
* 구속사적 재조명: 그러나 창세기 1장의 관심은 1절과 2절 사이의 가설적 공백이나 천사의 반역을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혼돈에는 질서를, 공허에는 충만함을, 흑암에는 빛을 주심으로 창조를 완성하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창조의 패턴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로 절정을 이룹니다.6
2) 4가지 창조의 날 견해 (Views on Creation Days)
창세기 1장의 ‘날(יוֹם, yôm)’을 두고 신학계에는 네 가지 대표적 견해가 존재합니다.⁸ - 24시간 문자적 날 견해 (Literal 24-hour/ Calendar Day View): 6일을 문자 그대로의 24시간 단위로 보는 견해.
- 날-시대 견해 (Day-Age Theory View): ‘날’을 긴 지질학적 시대로 보는 견해.
- 골격 가설 견해 (Framework Hypothesis View): 1–3일의 틀 형성(Forming)과 4–6일의 내용 채움(Filling)이라는 문학적·구조적 구도로 해석하는 견해.7
- 유비적 날 견해 (Analogical Days View): 창세기의 창조의 날들을 인간의 24시간적 경험과 유비적으로 연결된 하나님의 작업일로 이해하는 견해. 즉,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노동과 안식의 패턴에 비추어 계시한 것으로 보는 견해.8
* 구속사적 재조명: 창세기 1장의 핵심은 창조의 날들이 정확히 어떤 시간 단위를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쟁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문은 하나님께서 혼돈에는 질서를, 공허에는 충만함을, 흑암에는 빛을 부여하시며 자신의 창조 세계를 완성해 가시는 사역을 보여 줍니다. 또한 창조 기사는 성막과 성전의 건축 및 하나님의 임재라는 주제와 여러 면에서 연결되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시고 그 가운데 거하시는 왕이심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창조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창조로 완성됩니다.
형성(Forming)
| 채움(Filling)
| 제1일
| 제4일 | 빛과 어둠을 구분
| 해, 달, 별로 하늘을 채움
| 시간의 기본 질서 형성 | 시간의 표징(Signs)과 통치자 배치 | 창 1:3-5 | 창 1:14-19 | 제2일
| 제5일 | 궁창(하늘)과 물을 구분
| 새와 물고기로 하늘과 바다를 채움
| 거주 영역 형성 | 거주자 배치 | 창 1:6-8 | 창 1:20-23 | 제3일
| 제6일 | 바다와 육지 구분, 식물 창조
| 짐승과 인간으로 땅을 채움
| 생산적 세계 형성 | 통치할 존재 배치 | 창 1:9-13 | 창 1:24-31 |
3. 구속사적 적용
1) 창세 전 구속 언약과 완벽한 무능력의 깨달음 창세기 1장 2절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있는 세상 위에 하나님께서 질서와 충만함과 빛을 부여하시는 창조 사역을 보여 줍니다. 인간은 이 창조 과정에 어떤 공헌도 하지 못하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창조의 원리는 구속 역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죄로 인해 무질서와 죽음 아래 놓인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신 구원의 은혜에 의해서만 새롭게 됩니다. 따라서 창조는 하나님의 전능하심뿐 아니라, 구원의 전적인 은혜를 예표적으로 보여 줍니다..9 2) 출애굽 광야와 '엘로힘'의 계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오랫동안 우상숭배 문화 속에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의 거짓 신들을 심판하시고 자신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는 인간적인 의지와 자원이 고갈되는 장소였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말씀으로 백성을 훈련하시는 장소였습니다. 이러한 광야의 경험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혼돈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시는 모습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에게도 창조주요 언약의 하나님, 곧 '엘로힘'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3) 야곱을 이스라엘로 다루시는 하나님과 욥의 고백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던 야곱의 삶 속에 개입하셔서 그를 언약 백성의 대표인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셨습니다(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하나님께서 혼돈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셨듯이, 죄와 연약함 가운데 있는 자신의 백성을 새롭게 빚어 가십니다. 이러한 원리는 욥의 삶에서도 나타납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깊이 깨닫고 마침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5) 라고 고백합니다. 창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구속사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인도하심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4. 그리스도 핵심 적용
1)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임하는 중보자 그리스도의 필요성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아직 질서와 충만함과 빛을 부여하시기 전의 미완성된 창조 세계를 묘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상태를 방치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영으로 임재하시며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시고 생명을 채우시며 빛을 비추십니다. 이러한 창조의 원리는 구속 역사 속에서도 반복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어진 인간은 스스로를 새롭게 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창조의 은혜에 참여하게 됩니다.10 2) '라하프'의 성령 역사와 새 창조의 시작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의 "운행하시니라"(라하프, רָחַף)는 새가 둥지 위에서 새끼를 보호하고 품듯이 움직이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신 32:11). 본문은 일차적으로 혼돈하고 공허한 세상 위에 임재하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준비하시고 계심을 보여 줍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창조 때에 수면 위에 운행하시던 동일한 성령께서는 구속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역사하셔서 새 창조를 이루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공로를 택자들에게 적용하시고, 죽은 영혼을 살리시며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창조 때 혼돈 가운데 질서를 이루셨던 성령께서는 오늘도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죄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십니다. C. 성도의 삶 적용
1. 문제제기와 도전
1) 나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창세기 1장은 인간의 가능성으로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행위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인생을 완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의존하는 피조물입니다. 죄는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며, 믿음은 창조주를 의지하는 겸손입니다. 2) 자신의 의가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라
가나안 여인은 자신의 자격이나 공로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의 긍휼을 의지했습니다(마 15:27-28). 성도 역시 자신의 선함이나 경건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와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태복음 15:27) 2. 격려: 창조와 새 창조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1) 혼돈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라
창세기 1장 2절의 땅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혼돈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질서와 충만함과 아름다움으로 이끄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때로는 미완성과 연약함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이루어 가십니다. 2)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새롭게 빚어 가신다
창조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평생에 걸쳐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성화시키십니다. 현재의 연단과 고난도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빚어 가는 도구입니다. 3) 새 창조의 완성을 바라보라
창세기는 창조로 시작하고, 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마무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창조하신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현재의 삶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새 창조를 미리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약속입니다. D. 결론
참된 회개는 외적인 신앙의 모습이나 종교적 열심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던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인간의 눈에는 미완성이고 무질서해 보이는 세상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위에서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 혼란과 부족함 가운데 역사하시며 질서를 세우시고 생명을 주시며 빛을 비추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거나 하나님을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성령의 은혜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 한 분을 가장 큰 보배로 여기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혼돈에는 질서를, 공허에는 충만함을, 흑암에는 빛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마침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의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설교 마침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만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창세 전 구속 언약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며, 광야 같은 세상 속으로 성령을 보내어 운행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삶의 온갖 혼돈과 광야 속에서도 나를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운행하심을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거룩한 하늘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각주 (Footnotes)>
1. 창세기 1:1의 문장 기능에 관해서는 견해 차이가 있다. Meredith G. Kline는 창세기 1:1을 창조 과정의 첫 단계에 관한 독립적인 진술로 다루는 반면, Bruce K. Waltke는 1:1을 1:3–31의 창조 기사 전체를 요약하는 문장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독립절’이라는 문법적 설명과 ‘총괄적 요약’이라는 담화 기능은 구분해야 한다. Meredith G. Kline, “Space and Time in the Genesis Cosmogony,” Perspectives on Science and Christian Faith 48, no. 1 (1996): 2–15; Bruce K. Waltke, “The Creation Account of Genesis 1:1–3 Revisited,”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86, no. 1 (2024): 13–31; Vern S. Poythress, “Genesis 1:1 Is the First Event, Not a Summary,”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9, no. 1 (2017): 97–121. 2. 히브리어 תֹהוּ וָבֹהוּ (tōhû wābōhû)는 일반적으로 ‘형태가 없고 비어 있음’, ‘황폐하고 텅 빔’ 등으로 번역된다. 이 표현만으로 ‘하나님 자신을 알 수 없게 만드신 상태’ 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워 버리신 상태’라는 뜻을 사전적 의미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표현은 설교적·신학적 적용이다. David Toshio Tsumura, The Earth and the Waters in Genesis 1 and 2: A Linguistic Investigation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89); Gordon J. Wenham, Genesis 1–15, Word Biblical Commentary 1 (Waco, TX: Word Books, 1987), 주석 on Gen. 1:2. 3. 예레미야 4:23은 תֹהוּ וָבֹהוּ라는 표현과 빛의 부재를 함께 사용하여 심판으로 황폐해진 땅을 묘사하며, 창세기 1:2의 창조 언어를 반향하는 것으로 널리 이해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창조 질서의 역전이라는 정경적 연결을 뒷받침하지만, 창세기 1:2의 각 단어가 그 자체로 인간의 영적 무지를 뜻한다는 어휘적 증거는 아니다. Jack R. Lundbom, Jeremiah 1–20: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Bible 21A (New York: Doubleday, 1999), Jer. 4:23 주석 참조. 4. 동사 רָחַף (rāḥap̄)는 창세기 1:2에서 하나님의 영이 물 위에 ‘운행하다/맴돌다’는 뜻으로 사용되며, 신명기 32:11에서는 독수리가 새끼 위에서 너풀거리는 모습에 쓰인다. 두 본문을 연결하여 하나님의 보호와 생명 부여를 설교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라하프’ 자체가 곧 중생이나 선택의 적용을 의미하는 전문 신학 용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17,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0), 주석 on Gen. 1:2. 5. 간격 이론 또는 파괴-재건 이론은 창세기 1:1과 1:2 사이에 긴 시간적 간격을 두고, 그 사이에 심판이나 파괴가 있었다고 해석한다. 이 해석은 현대 주석가들 사이에서 합의된 견해가 아니다. 대표적 옹호자로는 George H. Pember가 있다. George H. Pember, Earth's Earliest Ages, and Their Connection with Modern Spiritualism and Theosophy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876). 6. 사탄의 반역 때문에 창세기 1:2의 땅이 파괴되었다는 견해와, 사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에게 경배하기를 거부했다는 유대 전승은 구별해야 한다. Life of Adam and Eve 계열의 일부 전승에는 아담에 대한 사탄의 거부 이야기가 나타나지만, 이를 창세기 1:2의 직접적인 의미나 Meredith G. Kline의 명시적 주장으로 돌릴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항목은 전승사적 배경으로만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 Gary A. Anderson and Michael E. Stone, A Synopsis of the Books of Adam and Eve, 2nd ed.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1999). 7. 골격 가설(Framework Hypothesis)은 창조의 날들을 단순한 연대기적 순서만으로 읽기보다 문학적·신학적 구조로 해석한다. Meredith G. Kline은 창세기 1장의 ‘두 층위(two-register)’ 우주론과 7일 구조를 비문자적·상징적으로 이해하는 견해를 제시했다. Kline, “Space and Time in the Genesis Cosmogony,” 2–15. 8. 창조의 날 해석에는 24시간 문자적 날, 날-시대 견해, 골격 가설, 유비적 날 견해 등 여러 분류가 사용된다. 분류 방식과 명칭은 학자에 따라 다르며, 이 목록이 모든 견해를 망라하는 것은 아니다. 유비적 날 견해의 대표적 논의로는 C. John Collins, Genesis 1–4: A Linguistic, Literary, and Theological Commentary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2006)를 참조할 수 있다. 9. ‘창세 전 구속 언약’(pactum salutis)은 성부·성자·성령의 구원 경륜을 성경 여러 본문에 근거해 조직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개혁파 신학의 개념이다. 창세기 1:2이 그 자체로 구속 언약을 명시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창조와 새 창조의 정경적 연결 안에서 이 교리를 적용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다.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 3, Sin and Salvation in Christ, ed. John Bolt, trans. John Vriend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6), 구속 언약 논의 참조. 10. 성경 전체의 통일성과 구속사적 읽기에 관해서는 Geerhardus Vos, Biblical Theology: Old and New Testaments (Edinburgh: Banner of Truth, 1975)를 참조할 수 있다. 1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답의 문구다. 마틴 로이드 존스가 ‘자기중심성’을 지옥에 갈 가장 극악한 죄라고 정확히 이 문장으로 표현했다는 주장은 정확한 저작·강연·쪽수 확인 없이는 직접 인용으로 처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Westminster Assembly, 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Q. 1. ---- <참고문헌 (Selected Bibliography)> Anderson, Gary A., and Michael E. Stone. A Synopsis of the Books of Adam and Eve. 2nd ed.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1999. Bavinck, Herman. Reformed Dogmatics. Vol. 3, Sin and Salvation in Christ. Edited by John Bolt. Translated by John Vriend.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6. Collins, C. John. Genesis 1–4: A Linguistic, Literary, and Theological Commentary.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2006. Hamilton, Victor P.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17.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0. Kline, Meredith G. “Space and Time in the Genesis Cosmogony.” Perspectives on Science and Christian Faith 48, no. 1 (1996): 2–15. Lundbom, Jack R. Jeremiah 1–20: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Bible 21A. New York: Doubleday, 1999. Pember, George H. Earth's Earliest Ages, and Their Connection with Modern Spiritualism and Theosophy.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876. Poythress, Vern S. “Genesis 1:1 Is the First Event, Not a Summary.”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9, no. 1 (2017): 97–121. Tsumura, David Toshio. The Earth and the Waters in Genesis 1 and 2: A Linguistic Investigation.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89. Waltke, Bruce K. “The Creation Account of Genesis 1:1–3 Revisited.”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86, no. 1 (2024): 13–31. Wenham, Gordon J. Genesis 1–15. Word Biblical Commentary 1. Waco, TX: Word Books, 19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