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공허 가운데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
본문: 창세기 1장 2절 (창세기 1:1–3절 포함) 핵심 메시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아직 질서와 충만함을 갖추지 못한 세계에 말씀하시고 자신의 영으로 역사하셔서 선한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는 주권자이십니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1-3, 개역개정)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2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over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face of the waters. 3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Genesis 1:1-3, ESV)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2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3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Genesis 1:1-3, NIV)
A. 서론: 하나님은 왜 창조의 시작을 혼돈과 공허로 묘사하셨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1장은 성경 전체의 문을 여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존재나 우주의 기원을 우연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은 우리에게 다소 낯선 장면을 보여 줍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언한 직후,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처음에 불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처음에는 완전한 세상이 있었지만 어떤 사건 때문에 파괴되었다는 뜻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것과 우리가 추론하는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말씀의 문법과 문맥과 문학적 구조를 주의 깊게 살핍니다.¹ 오늘 우리는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혼돈과 공허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창세기 1장 1–2절과 3절 이하의 관계는 무엇인가?
- 창조의 날들은 얼마나 긴 기간을 의미하는가?
B. 본론
1. 혼돈과 공허: 창조 세계가 아직 질서와 충만함을 갖추지 못한 상태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하고 공허하며”는 히브리어로 ‘토후 와보후(תֹהוּ וָבֹהוּ, tohu wabohu)’입니다. 이 표현을 이해하는 것이 본문 해석의 출발점입니다. 1) ‘혼돈’은 반드시 악이나 반역을 의미하지 않는다.
‘혼돈’으로 번역된 토후(tohu, formless)는 문맥에 따라 황량함, 무용함,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 또는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운 상태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공허’로 번역된 보후(bohu, empty)는 비어 있음 또는 충만하지 않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단어를 단순히 ‘악과 무질서’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 1장 2절에는 사탄의 반역이나 이미 발생한 죄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² (참조. 간격 이론, 파멸-재창조 이론, 스코필드 성경의 견해) 본문의 흐름을 고려하면, 땅은 아직 사람이 거주하며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질서와 충만함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묘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후 말씀으로 빛과 어둠을 구분하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영역을 구분하시며, 식물과 동물과 인간으로 창조 세계를 채우십니다. 따라서 ‘혼돈과 공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혼돈: 창조 세계가 아직 구별되고 질서화되지 않은 상태.
- 공허: 창조 세계가 생명과 거주자로 충만해지지 않은 상태.
- 창조의 진행: 하나님께서 구분하시고 질서를 세우시며 생명으로 채우시는 사역.
이는 창세기 1장의 문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첫 사흘에는 주로 영역을 구분하시는 모습이, 다음 사흘에는 그 영역들을 채우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³ 형성(Forming)
| 채움(Filling)
| 제1일
| 제4일 | 빛과 어둠을 구분
| 해, 달, 별로 하늘을 채움
| 시간의 기본 질서 형성 | 시간의 표징(Signs)과 통치자 배치 | 창 1:3-5 | 창 1:14-19 | 제2일
| 제5일 | 궁창(하늘)과 물을 구분
| 새와 물고기로 하늘과 바다를 채움
| 거주 영역 형성 | 거주자 배치 | 창 1:6-8 | 창 1:20-23 | 제3일
| 제6일 | 바다와 육지 구분, 식물 창조
| 짐승과 인간으로 땅을 채움
| 생산적 세계 형성 | 통치할 존재 배치 | 창 1:9-13 | 창 1:24-31 |
2) ‘혼돈과 공허’는 하나님이 악을 창조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주권자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절의 상태를 곧바로 도덕적 악이나 사탄의 반역의 결과로 해석할 근거는 본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일부 해석은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오랜 시간과 사탄의 반역이 있었으며, 그 결과 땅이 파괴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흔히 간격설 또는 재구성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창세기 1장 2절의 표현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고, 본문에 직접 언급되지 않은 사건을 추가해야 한다는 점에서 논쟁의 대상이 됩니다.⁴ (참조. 간격 이론, 파멸-재창조 이론, 스코필드 성경의 견해)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에 기록된 사실과 가능한 추론을 구별해야 합니다. 핵심은 혼돈과 공허 자체를 악으로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상태에 말씀하시고 창조 세계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질서화하신다는 사실입니다. 3) 흑암과 깊음 위에서도 하나님의 영은 운행하신다.
2절의 마지막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face of the waters.” (ESV) 본문은 흑암과 깊음만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계시며 운행하신다고 선언합니다. ‘운행하다(hovering over, 감싸며 맴돌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רָחַף (라하프, rachaph)’는 움직이며 감싸거나 맴도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11절에서는 독수리가 새끼 위에서 날갯짓하며 보호하는 모습에 사용됩니다.⁵ 이 표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창조 세계와 무관하게 계신 것이 아니라, 창조 사역 가운데 능동적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하나님의 영의 운행을 곧바로 특정한 창조 행위의 세부 과정과 동일시하기보다는, 창조 세계 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생명을 주시는 사역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창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사역으로 이해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창조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설교의 적용) 우리 삶에도 혼돈과 공허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개인의 삶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절은 모든 혼란이 곧 특정한 영적 원인 때문이라고 단정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창조 세계 위에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창세기 1장 1–2절과 3절 이하: 창조의 선언과 질서화의 사역
이제 본문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1) 1절: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절은 성경의 창조 신앙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단순히 정리하는 분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십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말씀을 하나님과 피조물의 근본적인 구별을 보여 주는 선언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창조되지 않은 창조주이시며, 세계는 하나님께 의존하는 피조물입니다.⁶ 다만 1절의 문법적 기능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 독립적인 최초의 창조 행위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1–3절 전체의 도입부 또는 창조 사역을 요약하는 선언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독립절, 표제문(요약문), 종속절 – 3개의 견해가 있음) 1절의 어느 한 문법적 해석을 모든 개혁주의 신학자가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 전체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선포한다는 공통된 핵심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⁷ 2) 2절: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시기 전의 땅
2절은 땅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이 구절을 반드시 ‘하나님께서 처음에 완전하게 창조하신 세계가 나중에 파괴된 상태’라고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러한 파괴의 원인이나 시점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3절 이하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2절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시고 생명으로 채우시는 창조 사역의 배경을 제공합니다. 3) 3절 이하: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시고 채우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 1:3) 3절부터 창조의 구체적인 사역이 본격적으로 서술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빛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그 뒤에도 창조 세계를 구별하고 채우시는 사역을 계속하십니다. 창세기 1장의 흐름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본문
| 핵심 내용
| 신학적 의미
| 1:1 |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 | 모든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 | 1:2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함 | 아직 질서와 충만함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 | 1:3 이하 |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창조 사역이 진행됨 |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의 능력 | 1:31 |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다고 하심 | 창조 세계의 선함과 하나님의 목적 |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혼돈과 공허’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실패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창조 세계를 다스리시고,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4) 개혁주의 창조 신앙과 성전-왕국의 관점
메러디스 클라인(Meredith G. Kline)은 성경의 창조 세계를 하나님의 왕권과 임재라는 관점에서 폭넓게 해석합니다. 그의 성전-왕국 관점은 창조 세계를 단순한 물질적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는 세계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⁸ 다만 창세기 1장 2절 자체가 ‘성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왕국이라는 주제는 본문의 직접적인 어휘적 의미와 구별하여, 성경 전체의 창조·성전·왕국 주제를 연결하는 신학적 해석으로 제시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 관점에서 창조는 단순히 물질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권을 드러내시고, 사람이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도록 하시는 일입니다. (설교의 적용)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에 질서를 세우셨다면, 교회 역시 말씀에 따라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교회의 목표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배하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3. 창조의 날들은 얼마나 긴 기간인가? 네 가지 대표적 견해
창세기 1장을 살필 때, 창조의 날들에 관한 논의가 신학자들에게는 큰 쟁점입니다. 창세기 1장의 본문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므로, 대표적인 네 가지 견해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달력일 해석 (Calendar-Day Interpretation)
이 견해는 창세기의 여섯 날을 통상적인 24시간의 하루로 이해합니다. 창조의 날들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전통적인 해석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반복적인 표현, 날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욤(yôm), 출애굽기 20장 11절의 창조와 안식일의 관계 등을 강조합니다. 대표적으로 존 칼뱅(John Calvin)은 창조 사역이 여섯 날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설명을 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현대의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 역시 대체로 이 해석을 지지합니다.⁹ 2) 날-시대 해석 (Day-Age Interpretation)
이 견해는 창세기의 각 날을 통상적인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장구한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히브리어 욤이 문맥에 따라 반드시 24시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만 욤이 다른 문맥에서 ‘기간’을 뜻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창세기 1장의 각 날이 반드시 지질학적 시대를 의미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휴 로스(Hugh Ross)는 ‘점진적 창조론’과 함께 ‘날-시대 해석’을 지지합니다. 3) 문학적 틀 해석 (Literary Framework Interpretation)
이 견해는 창세기 1장의 엿새를 반드시 연속적인 시간 순서로 이해하기보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전달하는 문학적·신학적 구조로 이해합니다. 대표적인 설명에서는 첫 사흘을 영역의 형성, 다음 사흘을 그 영역의 채움으로 연결합니다. 영역을 형성하는 날
| 영역을 채우는 날
| 첫째 날: 빛과 어둠 | 넷째 날: 해와 달과 별 | 둘째 날: 하늘과 바다 | 다섯째 날: 새와 물고기 | 셋째 날: 땅과 식물 | 여섯째 날: 육상 동물과 인간 |
이 표는 문학적 대응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창조 행위가 각 쌍의 날에 완전히 한정되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메러디스 클라인과 브루스 월트키(Bruce K. Waltke)는 이 견해와 관련하여 자주 논의되는 학자들입니다. 다만 두 사람의 세부적인 해석을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습니다.¹⁰ 4) 유비적 날 해석 (Analogical-Day Interpretation)
이 견해는 하나님의 창조의 날과 인간의 노동·안식의 날 사이에 유비적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인간의 노동은 동일한 차원의 활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날을 인간의 24시간 하루와 완전히 동일한 길이라고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창조와 안식의 패턴이 인간의 노동과 안식의 모형이 된다고 이해합니다. 대표적인 학자로 C. 존 콜린스(C. John Collins)와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을 들 수 있습니다.¹¹ * 네 견해를 평가할 때 기억해야 할 점
이 네 가지 견해를 비교할 때는 몇 가지 중요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첫째, 창조의 날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문제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가 하는 문제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둘째, 창조의 날을 24시간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자연주의적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날-시대 해석, 문학적 틀 해석, 유비적 날 해석은 각각 다른 논리와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그렇다고 모든 해석이 똑같이 타당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각 견해는 히브리어 문법, 본문의 문맥과 구조, 출애굽기 20장 8–11절 및 출애굽기 31장 17절과 같은 관련 본문을 통해 검토되어야 합니다. 넷째, 개혁주의적 접근은 논쟁이 있다는 사실을 이유로 성경의 권위를 약화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특정 해석에 관한 견해 차이를 성경 전체에 대한 믿음의 유무와 무조건 동일시하지도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4장 1절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 문구가 오늘날의 네 가지 해석 가운데 어느 하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확정하는지는 역사적·신학적 논쟁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신앙고백의 문구 자체와 그 문구에 대한 해석을 구별해서 다루는 것이 좋습니다.¹² ‘창조의 날들의 길이를 둘러싼 논쟁’이 청세기 1장 본문의 핵심을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말씀으로 창조 세계를 다스리시고, 자신의 선한 목적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4.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 창조: 혼돈에서 새 창조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창세기 1장 2절에 나타난 혼돈과 공허의 의미와,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 세계에 질서를 세우시는 사역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창세기 1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창세기 1장 2절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구속의 사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이 구절의 ‘혼돈과 공허’가 곧 죄나 사탄의 반역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본문에 직접 언급되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를 2절의 모든 표현에 억지로 대입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창세기 1장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성경 전체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새 창조의 완성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¹3 1) 만물의 창조주이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1–3절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선언을 연상시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1-3)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바울 역시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5-17)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창조 이후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등장하신 분이 아니라, 태초부터 성부와 함께 창조 사역에 참여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개혁주의 삼위일체 신학에 따르면 창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역이며, 세 위격은 구별되시지만 창조 사역에서 분리되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를 바라볼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 목적을 이루시는 전체적인 구속사적 흐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조 세계는 그리스도와 무관한 세계가 아닙니다. 만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2) 첫 창조의 선함과 인간의 타락,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를 죄의 결과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 상태가 사탄의 반역이나 인간의 죄 때문에 발생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이후, 죄와 죽음이 인간의 삶과 창조 세계에 깊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가르칩니다. 바울은 이어서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합니다(롬 5:12–21; 고전 15:45–49).14 첫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불순종과 사망의 길을 열었습니다. 반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끝까지 순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정죄와 사망을 가져왔다면, 그리스도의 순종은 그분에게 속한 자들에게 의와 생명을 가져옵니다(롬 5:18–19). 이것이 개혁주의 언약 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두 아담의 대조와 언약적 대표성입니다. 첫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서 실패했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의 대표로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신 분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순종하시고 그들의 죄를 담당하신 구속자이십니다.15
따라서 창세기 1장 2절에서 창세기 3장으로, 그리고 로마서 5장으로 이어지는 성경의 흐름을 살펴볼 때 우리는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창조 초기에 나타난 혼돈과 공허는 그 자체로 죄의 결과라고 할 수 없지만, 인간의 타락 이후 죄와 사망으로 인해 손상된 창조 세계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3)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비추는 복음의 빛
창세기 1장 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고, 빛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창조의 말씀을 신자의 회심과 복음의 빛에 연결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바울은 창조 때 빛을 비추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의 마음에도 복음의 빛을 비추신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 3절의 빛이 곧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첫 창조에서 빛을 명하셨듯이, 구속의 역사에서는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게 하신다는 성경적 연결입니다.16
죄인은 자신의 힘으로 영적인 어둠을 몰아내고 하나님을 참되게 알 수 없습니다. 창조 때 빛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하게 되었듯이, 죄인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복음의 빛이 비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인간의 자기 개선이나 도덕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점에서 창조의 말씀과 복음의 말씀은 구별되면서도 서로 연결됩니다. 창조의 말씀은 세계를 존재하게 하시고, 복음은 성령의 역사로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새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4) 혼돈과 공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성경의 구속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완성된 구속을 선포할 뿐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새 창조를 바라보게 합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합니다(고후 5:17).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것을 증언합니다(계 21:1–5). 여기서 우리는 창세기 1장과 요한계시록 21장의 중요한 연속성을 발견합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며, 마침내 새 창조를 완성하신다고 가르칩니다.17 물론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가 곧바로 요한계시록의 죄와 사망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따라가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시고 질서를 세우신 사역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속과 새 창조의 소망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단순히 현재의 혼란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낙관론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며, 자기 백성을 새롭게 하시고, 마지막 날에 온 창조 세계를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완성하실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의 메시지는 혼돈 자체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도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새 창조를 이루신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 2절을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흐름 속에서 읽을 때 발견하는 그리스도 안의 소망입니다. D. 결론: 혼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1장 2절은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세상은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사역으로 존재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1장 3절에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권위 있는 말씀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목적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혼돈과 공허로 묘사된 땅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구별되고 채워집니다. 창세기 1장 31절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란스러운 현실을 바라볼 때에도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 즉시 특정한 방식으로 개입하실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여전히 주권자이시며,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과 삶을 다스리는 권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이 말씀을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구속의 사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주 하나님은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창조의 소망을 보여 주십니다(고후 4:6; 5:17). 창조의 하나님께서 죄와 죽음으로 무너진 세상을 구속하시며,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고백이 이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 삶과 가정과 교회가 혼돈과 공허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아멘.
<각주> 1.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PCA), Report of the Creation Study Committee, 27th General Assembly (1999), secs. I–IV. 이 보고서는 창세기 1–3장의 역사성과 성경의 권위에 대한 공통된 확신을 밝히면서, 창조의 날들의 성격과 길이에 대해서는 위원회 내에 견해 차이가 있음을 명시한다. 2. Gordon J. Wenham, Genesis 1–15, Word Biblical Commentary 1 (Waco, TX: Word Books, 1987), 주석 on Gen. 1:2; Bruce K. Waltke with Cathi J. Fredricks, Genesis: A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2001), 주석 on Gen. 1:2. 3. PCA, Report of the Creation Study Committee, sec. IV, “Genesis 1–3 and the Days of Creation: A Description of the Major Interpretations,” 특히 문학적 틀 해석과 유비적 날 해석에 대한 논의. 4. PCA, Report of the Creation Study Committee, sec. IV.E, “Other Interpretations of the Days of Creation,” 간격설 또는 재구성설에 대한 설명. 5. Francis Brown, S. R. Driver, and Charles A.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Oxford: Clarendon Press, 1907), s.v. “רָחַף”; Deuteronomy 32:11. 6. Westminster Assembly,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 4.1. 7. Wenham, Genesis 1–15, 주석 on Gen. 1:1–3; Waltke with Fredricks, Genesis, 주석 on Gen. 1:1–3. 8. Meredith G. Kline, Kingdom Prologue: Genesis Foundations for a Covenantal Worldview (Eugene, OR: Wipf & Stock, 2006). 성전-왕국 관점을 창세기 1장 2절의 직접적인 어휘적 의미로 단정하기보다는, 창조 세계와 하나님의 통치를 연결하는 성경신학적 틀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9.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trans. John King, vol. 1 (Edinburgh: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7), 주석 on Gen. 1:3–5; PCA, Report of the Creation Study Committee, sec. IV.A, “Calendar-Day Interpretation.” 10. Meredith G. Kline, “Because It Had Not Rained,”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20, no. 2 (1958): 146–57; Bruce K. Waltke with Fredricks, Genesis, 창세기 1장 주석. 두 학자의 세부 견해는 구별하여 검토해야 한다. 11. C. John Collins, Genesis 1–4: A Linguistic, Literary, and Theological Commentary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2006); Michael Horton, The Christian Faith: A Systematic Theology for Pilgrims on the Way (Grand Rapids: Zondervan, 2011), 창조와 안식일에 관한 논의. 12. Westminster Assembly,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4.1; PCA, Report of the Creation Study Committee, sec. V, “Original Intent of the Westminster Assembly.” 13.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 2, God and Creation, ed. John Bolt, trans. John Vriend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4), 창조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관한 논의. 14. John Murray,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 1,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59), 롬 5:12–21 주석. 15. O. Palmer Robertson, The Christ of the Covenants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1980), 아담의 언약과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언약의 흐름에 관한 논의. 16. 4. Geerhardus Vos, Biblical Theology: Old and New Testaments (Edinburgh: Banner of Truth, 1975), 창조와 타락 이후 구속사의 전개에 관한 논의. 17.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 2. God and Cre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