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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게시판

제목창세기 1:1의 “태초에”를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로 해석하는 견해2026-10-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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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의 “태초에”를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로 해석하는 견해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를 그리스도와 연결해 해석하려면, 먼저 히브리어 본문의 직접적인 의미와 신약성경에 근거한 정경적·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을 구분해야 합니다.

창세기 1:1의 히브리어는 בְּרֵאשִׁית (berēʾšît)이며, 일반적으로 “태초에” 또는 “처음에”로 번역합니다. 이 표현 자체가 문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헬라어 신약성경의 ἐν Χριστῷ (en Christō)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창조를 그리스도와 분리해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1–3은 창세기 1:1의 “태초에”(ἐν ἀρχῇ, en archē)를 의도적으로 연상시키면서, 만물이 말씀을 통해 창조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골로새서 1:16은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볼 때는 다음 세 가지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직접적인 어휘적 해석: 창세기 1:1의 “태초에”가 그 자체로 “그리스도 안에서”를 뜻한다는 주장.

  • 신약의 정경적 해석: 창조의 말씀이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연결되므로 창세기 1:1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읽는 해석.

  • 창조의 그리스도론적 해석: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되고 그리스도를 향해 존재한다는 신약의 가르침을 창세기 1장에 적용하는 해석.

전통적인 개혁주의 주석과 성경신학은 대체로 두 번째와 세 번째 접근을 지지합니다. 다만 이것이 첫 번째 주장, 곧 히브리어 berēʾšît 자체의 사전적 의미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뜻이라는 주장과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1. “태초”를 그리스도와 연결한 주요 학자들

①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354–430)

직접적인 역사적 근거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제11권에서 창세기 1:1을 묵상하면서 “태초”를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곧 아들과 연결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말씀 안에서, 아들 안에서, 지혜 안에서 창조하셨다고 해석합니다.

특히 《고백록》 11.9.11에서 다음과 같이 씁니다.

“In this Beginning … You made heaven and earth—in Your Word, in Your Son, in Your Power, in Your Wisdom, in Your Truth.”

즉, “이 태초 안에서 주께서는 말씀 안에서, 아들 안에서, 능력과 지혜와 진리 안에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구분: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은 단순히 시간의 시작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으로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창조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그리스도론적 해석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이 견해는 창세기 1:1의 “태초”를 그리스도와 연결하는 역사적 근거가 되지만, 히브리어 단어 자체의 사전적 의미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각주에 사용할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1. Augustine, Confessions, 11.8.10–11.9.11. 영어 번역은 New Advent의 The Confessions, Book XI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 존 길(John Gill, 1697–1771)

길은 침례교 신학자이자 개혁파 전통에 속한 성경 주석가입니다. 그의 《구약과 신약 전체 주석》(An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은 창세기 1:1을 해설하면서 고대 교부들 가운데 일부가 “태초”를 하나님의 지혜, 곧 로고스와 하나님의 아들로 해석했다고 기록합니다.


Genesis 1:1

다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길은 이 해석을 자신의 유일하거나 명시적인 문법적 결론으로 확정하지 않고, 고대 해석의 한 전통으로 소개합니다. 그는 “태초”를 시간의 시작 또는 창조의 시작이라는 의미로도 설명합니다.

따라서 길을 인용할 때는 “길은 창세기 1:1의 태초가 곧 그리스도를 뜻한다고 단정했다”라고 쓰기보다는, “길은 ‘태초’를 하나님의 지혜와 로고스, 아들에게 연결하는 고대 해석 전통을 소개한다”라고 쓰는 것이 정확합니다.

각주 예시:

2. John Gill, An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 vol. 1, Genesis, 주석 on Genesis 1:1. 온라인 원문: John Gill의 창세기 1:1 주석 .

③ 메러디스 G. 클라인(Meredith G. Kline, 1922–2007)

클라인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태초”를 곧바로 “그리스도”로 번역하는 해석을 대표하는 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창세기 1:1을 신약의 그리스도론적 창조 이해와 연결하는 데 중요한 개혁주의 학자입니다.

그는 “Space and Time in the Genesis Cosmogony”에서 창세기 1:1이 보이는 세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의 영역까지 포함하는 창조 선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이 해석을 골로새서 1:16 및 요한복음 1:1–3의 그리스도론적 창조 이해와 연결합니다.


따라서 클라인은 “태초 = 그리스도”라는 직접적인 어휘적 해석의 대표자라기보다, 창세기 1:1의 창조 선언을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신약의 증언과 연결하는 개혁주의 성경신학자로 인용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각주 예시:

3. Meredith G. Kline, “Space and Time in the Genesis Cosmogony,” Perspectives on Science and Christian Faith 48, no. 1 (March 1996): 2–15.


2. 존 칼뱅은 이 해석을 어떻게 평가했는가?

존 칼뱅(John Calvin, 1509–1564)

칼뱅은 창세기 1:1의 “태초”를 그리스도 자신으로 해석하는 견해를 명시적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는 모세가 이 구절에서 의도한 것은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라고 설명합니다.


칼뱅의 주석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To expound the term ‘beginning,’ of Christ, is altogether frivolous.”

이는 “‘태초’라는 말을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뜻입니다.¹

그렇다고 칼뱅이 창조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부정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칼뱅은 요한복음 1:1–3을 해설할 때, 영원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² 그가 거부한 것은 창조주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가 아니라, 창세기 1:1의 ‘태초’라는 단어 자체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John Calvin's Bible Commentary+1

각주:

  1.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trans. John King, vol. 1 (Edinburgh: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7), 주석 on Genesis 1:1. ccel.org .

  2.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vol. 1, 주석 on John 1:1–3. ccel.org .

3. 학자들의 견해 비교

학자

창세기 1:1의 “태초”에 대한 입장

선생님의 연구에서 활용할 점

아우구스티누스

태초를 하나님의 말씀과 아들 안에서의 창조와 연결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론적 해석

존 길

태초를 하나님의 지혜·로고스·아들과 연결하는 고대 해석을 소개

해석 전통의 역사적 증거

메러디스 G. 클라인

창세기 1:1을 골 1:16 및 요 1:1–3의 창조론과 연결

개혁주의 성경신학과 그리스도 중심적 창조론

존 칼뱅

‘태초’라는 단어 자체를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것은 거부

어휘적 의미와 정경적 해석의 구분